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앙리 파브르 (문단 편집) === 유년에서 청년 시절 === 파브르는 1823년 12월 22일, [[프랑스]]의 남부 지방인 생레옹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빈농이라 돈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인 앙리가 농부는 아니어도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아이 둘을 키울 수가 없어 파브르는 4살 무렵 말라발의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다. 할아버지는 [[부농#s-1|부농]]이라 살 만했고, 파브르의 수기에서도 할아버지 집에서는 흰 빵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그러다 취학할 나이인 7살에 고향 생레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은 여전히 가난하여 파브르는 장난감조차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파브르는 어렸을 때부터 마을 앞에 흐르는 시냇가에서 노는 걸 좋아했는데, 주변의 [[벌레]]들을 관찰하며 즐겼고 나중에는 직접 벌레들을 키웠고 그중 파브르가 발견 했던 쇠똥구리는 나중에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생계 유지에 바빴던 파브르의 부모님은 쓸데없는 것들이라며 파브르가 가지고 온 곤충들을 도로 [[방생]]하기도 했다.[* 훗날 파브르도 그 당시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고 했다.] 이후 계속되는 가난 때문에 파브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객지에 나가서 직접 돈을 벌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철도 막노동 등을 비롯하여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학구열이 뛰어난 청년이었던 파브르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물론 파브르가 공부에 기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을 나와 막노동을 하기 전까지 성당에서 [[복사(기독교)|복사]]를 서며 학비를 면제받고 왕립 학원, 레스킬 신학교를 다녀서 [[라틴어]]에 능통했다. 이는 후에 사범학교 근로 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게 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19살에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사범학교의 근로 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였고, 졸업 후 초등교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 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1849년에는 [[중학교]] [[화학교사]]가 되었고, 또 4년 후에는 [[고등학교]] 물리교사가 된다. 이때 파브르가 얼마나 교직 생활에 열심이었는지 화학실험을 할 때에는 학생들보다 자신이 더 열정적이었으며, 아이들과 야외수업을 할 때는 벌집을 따서 [[꿀]]을 나눠먹기도 했다. 파브르가 화학교사를 맡았던 허름한 중학교는 파브르 덕분에 명성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파브르는 자연과학 공부를 쉬지 않아서, 동료 교사들이 [[파리(곤충)|파리]]를 연구하는 파브르에게 '파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보면 알겠지만, 파브르는 학자로서는 정규 과정을 밟지 않고 교직에서 생활연구자로 살아갔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랑제콜]]이나 프랑스 아카데미에 편입되지 않았다. 본인은 프랑스 아카데미에 조금 미련이 있었는지 아쉬워했다. 프랑스 학계의 그랑제콜 편애를 생각해보면 특이한 케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